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선-류큐 관계 (문단 편집) == 이기빈의 류큐국 왕자 살해설 == 조선왕조실록의 제주목사를 지냈던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41508&cid=46622&categoryId=46622|이기빈]]의 졸기 부분에서 이기빈이 류큐국 왕자를 죽였다는 기록이 있다. [[http://sillok.history.go.kr/id/kpa_10301008_001|실록]] 그러나 실제로 이기빈이 류큐국 왕자를 살해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이기빈이 제주 목사로 있으면서 표류한 외국 배의 선원을 죽이고 재물을 약탈한 것은 사실이지만 류큐국 왕자를 죽였다는 내용은 오직 조선왕조실록의 이기빈 졸기에만 등장하는 내용이다. 1611년(광해군 3) 8월에 제주도에 외국 배가 표류한 사건은 이기빈에 의해 적선이 출몰하여 왜구를 공격했다는 장계로 알려진다. 그러나 이후 이 배가 왜적선이 아니라 일반 상선이었다는 말이 퍼지자 조정에서는 다시 조사하여 이기빈의 보고가 거짓임을 밝히고 귀양을 보낸다. 그러나 제주도에 표류한 배에 어떤 사람이 있었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사건은 정리된다. 그리고 1년 뒤 제주도에 다시 배 한 척이 표류한다. 1612(광해군 4) 9월 9일에 류큐인 8명이 표류해왔다는 보고가 올라오고 9월 12일에는 이들에게 노자를 마련하고 류큐국 왕에게 이들을 송환시킨다는 내용으로 자문을 지어 함께 보낼 것을 청한 데 대해 왕이 윤허한 기록이 있다. 류큐 측에서도 이들을 무사히 송환한 것에 대해 감사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1620년에 중산세자 상풍의 명의로 조선에 보낸 이이문(移彛文)에는 1612년 제주에 표류한 인물 8인을 환국시킨 것에 대해 감사하다는 내용이 있다. 이기빈이 실제로 류큐국 왕자를 살해했다면 류큐와 조선의 우호 관계가 적대 관계로 전환되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1659년(효종 10)에 고기잡이를 하다 류큐에 표류한 이들을 쌀을 주며 우대했던 기록이 존재하며 1661년(효종 2)에도 28명이 류큐를 거쳐 대마도에 표류한 기록이 있는데 류큐에서 아무런 박해를 받지 않았다. 이런 기록은 1669년, 1716년, 1741년에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표류했다가 돌아온 조선인들의 증언에는 류큐 세자가 살해되었다는 등의 이야기는 전혀 언급된 바 없다. 또한 조선 후기 학자 정동유(1744~1808)가 쓴 《주영편》에는 류큐국 세자를 살해한 일로 류큐국에서 조선을 원수로 여긴다는 이야기가 퍼져 있어, 북경에 간 조선 사신이 류큐국 사신을 만나 류큐국에서 조선을 원수로 여기냐고 묻자 류큐국 사신이 크게 놀라며 그런 일은 없다고 답했다는 내용도 존재한다. 오히려 피해자가 베트남인일 가능성도 있는데, 1770년에 폭풍을 만나 표류했다 돌아온 제주도 선비 장한철의 기록인 <[[표해록]]>을 보면 무인도에 표류했던 장한철 일행이 지나가던 중국 상선에게 구조되었는데 그들이 탐라 사람임을 안 중국 상선의 베트남인 선원들이 칼을 빼들고 "우리 왕자를 탐라 왕이 죽였었으니 너희를 죽여서 복수하겠다"고 하여 중국인 선주가 유혈사태를 막기 위해 조선인들을 조각배에 태워 내쫒았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위에 언급된 《주영편》에 실린 기록을 보면 제주도 어민들이 폭풍으로 표류하여 안남국(베트남)까지 표류했을 때 베트남의 고위 관리가 '예전에 베트남의 왕자가 조선인들의 손에 죽었으니 나도 너희를 죽여서 그 원수를 갚아야겠다'는 말을 통역을 통해(한문을 이용한 필담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했다가, 그 말을 전해듣고 통곡하는 조선 어민들의 모습을 본 관리의 부인이 농담이었으니 너무 놀라지 말라고 달래고 실제로도 아무런 위해는 없었다는 기록이 있다. 즉 이기빈이 제주에 표류한 동남아 상선을 약탈하고 그 선원을 죽였던 것은 진실이나 류큐국의 왕자를 죽였다는 설화는 광해군말기 인조초기의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서 만들어진 허구라고 할 수 있다.[* 박수밀. (2015). 고전문학 한문학 : 류큐 세자 이야기의 진실과 변이(變移) 양상 -역사적 사건의 굴절 양상과 그 의미-. 우리어문연구, 51(0), 175-203. 참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